치매예방

치매와 방향 감각 상실: 왜 익숙한 길에서 길을 잃을까?

sunnycan 2025. 7. 8. 02:31

자주 다니던 길에서조차 길을 잃는 이유, 단순한 건망증일까?

 

치매 초기 증상으로 흔히 알려진 것은 기억력 저하이다. 하지만 기억력 저하보다 먼저 나타나는, 그러나 사람들이 종종 간과하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방향 감각 상실’이다. 치매 환자가 자주 다니던 길에서 갑자기 길을 잃거나, 익숙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위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은 많은 가족들에게 당황스러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몇 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하거나 경찰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있다. 이런 증상은 단순한 건망증이 아닌, 뇌 내비게이션 시스템 자체의 오류에서 기인하는 증상으로 보인다.


우리 뇌는 특정한 구조와 경로를 통해 공간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며, 위치를 인식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뇌의 ‘공간지각 시스템’이 손상되면, 익숙한 공간도 낯설게 느껴지고 방향 감각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치매 환자에게 방향 감각 상실이 왜 발생하는지, 어떤 뇌 구조와 기능이 관여하는지, 일반적인 방향 감각 저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실제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까지 단계별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방향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구조, 해마와 후두엽, 그리고 ‘내비게이션 신경망’

 

방향 감각은 단순히 지도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뇌의 복잡한 기능적 협업을 통해 구현된다. 특히 해마(hippocampus)와 후두엽(occipital lobe), 그리고 측두엽의 공간 기억 회로가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할 뿐 아니라, 공간 정보를 구조화하고 장소 간의 관계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기능은 우리가 익숙한 길을 기억하고, 목적지까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 중간의 랜드마크를 인식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고 한다.


치매 중 특히 알츠하이머형 치매에서는 해마가 가장 먼저 위축되고 손상되기 때문에, 기억력 저하 이전에 방향 감각의 손실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14년 영국 런던대학 연구팀은 치매 고위험군 노인을 대상으로 한 fMRI 연구에서, 초기 알츠하이머 군은 낯선 길보다 익숙한 길에서 더 높은 공간 인식 오류율을 보였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는 뇌가 단순히 ‘기억된 정보’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공간 정보와 이전 기억을 ‘매칭’하는 복합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내비게이션 신경세포로 불리는 ‘Grid cell(격자세포)’, ‘Place cell(장소세포)’, ‘Head direction cell(방향세포)’ 같은 특수 신경세포들이 좌표계 역할을 하며 뇌 내 지도를 형성하게 되는데, 치매 환자에게 이러한 신경세포의 활성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금의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치매 환자는 목적지를 잘 알고 있어도, 중간의 방향 전환 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고 한다.

 

단순한 길치와 치매의 방향 감각 상실은 어떻게 다를까?

 

누구나 한 번쯤은 길을 잘못 들거나, 처음 가본 장소에서 길을 잃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방향 감각 부족’과 치매에서 나타나는 방향 감각 상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의견이다.


일반인의 경우 방향 감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지도 보기’, ‘길을 물어보기’, ‘기억을 더듬기’ 등 보완 전략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어 방향 감각이 떨어지더라도 위기 상황에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치매 환자는 이 보완 전략 자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길을 잃었다는 위기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된다. 이는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의 저하로 인해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사고 능력이 손상된 데 따른 것이다. 

 

또한, 현재 위치와 목적지 간의 ‘관계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서 걷던 길을 그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능력도 약해지게 되는 것이다. 초기에는 비교적 간단한 길에서만 길을 잃다가, 점차 자신의 집 구조조차 낯설게 느끼며 실내에서도 방향을 잃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복도에서 욕실로 가는 길, 부엌에서 침실로 이동하는 동선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공간을 헤매게 되는 것인데, 이는 ‘에피소드 기억’뿐 아니라 ‘공간 지각 능력’ 자체가 퇴화했음을 의미하고 있으며, 치매의 진행 단계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한다.

 

치매 환자의 길 잃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치매 환자의 방향 감각 상실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될 수 있다.

따라서 가족과 보호자는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예방 전략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다. 우선 치매 환자가 외출할 경우 동행을 원칙으로 하여 혼자 길을 잃거나 위험요소에 빠지지 않도록 대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초기 단계에는 환자가 본인이 정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 외출하려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위치 추적이 가능한 GPS 기기를 사용하거나, 스마트워치 형태의 위치 알림 기기를 착용하게 하는 것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환자를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거주 공간의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벽이나 문에 시각적 표식을 제공하는 것도 방향 인식을 돕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욕실 문에는 파란색 화살표와 ‘화장실’이라는 큰 글씨를 붙이고, 침실에는 가족사진과 이름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단서는 치매 환자의 공간 인지 부담을 줄이고, 익숙한 공간에서조차 길을 잃는 상황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치매 환자의 생활 반경을 좁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넓은 동선은 오히려 환자의 불안을 증가시키고 방향 상실을 악화시키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루틴을 형성하게 되면, 뇌에 공간 정보를 강화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잘못이 아닌 뇌 기능의 손상 때문이라는 인식하고, 혼잣말처럼 “내가 왜 이러지?”를 반복하거나,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돌아다니는 행동은 의도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환자의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나무라기보다는 , 그 상황에서 환자가 느끼는 혼란과 불안을 최소화하도록 주변에서 환자는 돕는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