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치매 환자의 수 역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치매 환자는 인지 기능 저하로 인해 일상생활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주변 환경이 이에 맞춰 조성되지 않으면 사회적 고립과 안전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치매 친화 마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치매 친화 마을은 환자가 거주 지역 내에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 서비스 체계, 주민 인식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갖춘 공간이다. 이 글에서는 치매 친화 마을의 개념과 특징, 해외와 국내의 대표적 조성 사례, 조성 과정에서의 성공 요인과 한계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치매 친화 마을의 개념과 핵심 요소
치매 친화 마을은 단순히 의료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치매 환자 친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개념의 핵심은 치매 환자가 자신의 집과 이웃, 상점, 공공기관 등 일상적인 공간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인프라를 조화롭게 설계하는 것이다.
건축 측면에서는 길 안내 표지판을 명확히 하고, 골목과 건물 내부의 조명을 밝게 유지하며, 혼동을 최소화하는 색채 디자인을 적용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치매 인식 교육을 실시하여, 환자가 길을 잃거나 불안해하는 상황에서도 친절하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약국, 마트, 은행 등 생활 필수 서비스 기관이 치매 환자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될 때 치매 환자는 지역사회 안에서 자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해외의 대표적 치매 친화 마을 사례
네덜란드의 ‘호 헤벡(Hogeweyk)’ 마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치매 친화 마을 사례 중 하나다. 이 마을은 치매 환자만 거주할 수 있는 전용 주거 단지로, 작은 마트, 카페, 미용실, 극장 등이 마을 내부에 마련되어 있다. 모든 건물은 치매 환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직원과 봉사자는 모두 치매 돌봄 교육을 받은 인원으로 구성된다.
환자는 일반 마을 주민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지만, 보이지 않는 형태로 안전 관리가 이루어진다. 영국에서도 치매 친화 마을 조성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버스 노선 안내를 단순화하고, 공공건물에 그림과 글자를 함께 표기하는 방식으로 환자의 길 찾기 능력을 돕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소규모 커뮤니티 단위로 치매 환자를 지원하는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의료·돌봄·복지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며, 주민 참여형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의 치매 친화 마을 조성 사례
한국에서도 2017년 이후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치매 친화 마을 시범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전북 전주시의 ‘치매 안심마을’은 주민 대상 치매 인식 개선 교육, 가게와 버스정류장에 치매 환자 안내 표지 설치, 마을 내 CCTV 확충 등을 통해 안전망을 강화했다. 경남 창원시의 경우, 치매 환자 가정과 인근 상점이 협약을 맺어 길 잃은 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가족과 연계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서울 강북구는 치매 환자가 자주 이용하는 경로당과 복지관에 ‘치매 안전지킴이’를 배치하여 긴급 상황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치매 친화 마을이 단순한 인프라 구축을 넘어, 주민·상인·지자체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 위에 세워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조성 과정의 성공 요인과 한계
치매 친화 마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사회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해가 필수적이다. 주민이 치매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환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지속 가능한 재정 지원이 확보되어야 한다. 초기 조성 비용뿐 아니라, 시설 유지·보수와 인식 교육, 돌봄 서비스 운영을 위한 예산이 꾸준히 투입되어야 한다.
셋째, 치매 환자 개개인의 상태와 필요를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일부 지역에서 사업이 단기 프로젝트에 그치거나, 형식적인 교육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사업이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치매 친화 마을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 부문이 장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치매 친화 마을은 단순한 복지 사업이 아니라, 치매 환자가 존엄성을 유지하며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종합적 사회 모델이다. 해외와 국내 사례 모두, 성공의 핵심은 물리적 환경 개선과 함께 주민 인식 변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에 있었다.
한국이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치매 친화 마을은 앞으로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되어야 하며, 특히 농촌·도서 지역에 특화된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치매 환자도 이웃으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치매 친화 마을은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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